세상의 "나머지 80%"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세상 80%가 억울할 이야기 좀 해야겠어.

 예를 들어 모두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있단 말이야.
사람들은 모두들 그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했지.
 누군가는 해야 했으니까 말이야.

 근데 모두가 열심히 하더라도 말이지
너무나도 안 하는 애들도 있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빼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곤 하지.
서로 긁고, 때리고, 싸우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아무리 쌩을 까더라도 안 만날 수는 없거든.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그 녀석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교화될 수 밖에 없어.
 그네들도 곧 달콤한 타협이 편안하다는 걸 알게 되거든. 마치 역사 속의 독립군이나 레지스탕스들처럼.

 그렇게 만약 그간 노력의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 뭔가가 온다면 그때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백이면 구십 오는 1순위 그런 아이들에게 지불하지. 그게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니까.
 아무리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자포자기하면 손해거든. 마치 학교생활의 문제아와 같은 거야.
선생님들은 자꾸만 그런 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웃고 장난을 치곤 하거든.
 때론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지. 안 되는지 알지만 그 아이들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말이야.

 근데 그렇게.

 그런 아이들이 뭔가를 받는다면 나머지 아이들은?
평소에 원래 잘 했는데 중간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그런 사람은?
 그냥 잘 했던 사람은? 적당히 열심히 했던 사람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너무 착해서 마냥 길가에 치이는 돌맹이같고
아무런 빛을 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쩌면 좋아. 자기보다 훨씬 안 하던 사람들한테
모든 것을 빼앗기게 생겼는데 말이야.
 그런 아이들 지옥간다고들,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
만약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어떡해? drunken tiger의 기우제에서 말한 것처럼
 왠지 바보 같다는 생각은 떠나지를 않아. 묵묵히 착하게 일한 사람들은 소처럼 결국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고 아무 것도 남지를 않아. 어쩌면 좋지? 이 불쌍한 사람들을 어쩌면 좋아..

by 평범한아이 | 2009/11/10 19:47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1)

가끔 짓는 해맑은 웃음의 의미

나한텐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척 힘이 들 때면 몹시 웃는 거야.
빙그레, 웃고 있대.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어느새 그렇게 웃고 있었나보지.

 대학교 1학년 때, 난 드물게도 앞으로 뭘 하고 살 것인지 고민을 참 많이 했어.
다들 중3에서 고2면 끝난다는 그 고민을 그제서야 시작한 난 늦둥이였지.
 고민이 많아서 항상 웃고 있었어. 주변 사람들은 내 웃긴 표정을 보며 웃었지.
아마 내가 엄청 행복한 녀석으로 보였을려나봐. 그냥 웃으면서 술 한 잔 하자는 말
 한 마디면 대부분이 OK였어.

문득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웃지 않는 날들,
 그러니까 행복한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많은 친구들이 의아해했어.
난 몰래 사귀고 있었거든. 그날도 무표정하게 술을 마시자고 한 내게 친구들은
'H 여자한테 차였나보다~ 까르르르릌ㅋㅋ'
한 어이없는 웃음으로 날 당황하게 만들었지. 별로, 난 그냥 술이 마시고 싶었는데.

우연히 친구네 집에서 올드보이를 봤던 적이 있어.
 깊은 감명을 받았지.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난 어쩌면 괴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몰라. 내 라이프 스타일 모델은 오대수일지도 모르고 다른 누군가일지도 모르지.

by 평범한아이 | 2009/11/09 19:35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0)

좋았던 옛날에는요.

 

 

 

옛날엔 좋았는데,

옛날엔 좋았는데,

옛날엔 좋았는데,

 

하지만 짧은 내 기억력이나마 구체적으로 훑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새 발견하게 된다.

「그때는 고민도 없고 참 좋았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때였거든.」

이라고 자주 어릴적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그때도 분명 나는 많은 것을 고민하고 있었고 지금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때에 내가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을 아직까지 놓지 않고 있는데, 이 자그마한 조각은 시간을 더할 수록, 그 선명함은 사라졌지만 은은하게, 아름답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래 어느날 똑바로 바라보니 그때의 나는 같이 놀기로 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러가서 삐져있었다.
그래, 내가 쥐고 있었던 손 안에 남아있던 것은 '아름다운 광흔'이지 '꼬리가 반짝이는 통칭 반딧불이라고하는 딱정벌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난 '찰리브라운과 스누피'라는 비디오 테입을 찾으려 뒤적거리다 우연히 형이 녹화해둔 음악프로 테입을 발견하고 틀어봤는데 그건 오락실이란 그룹이 후라는 노래를 부르는 부분만 제대로 멀쩡했고 나머지 부분은 섞이거나 짤렸는데 난 그 노래를 처음 듣고 무척이나 행복해 했었다.

 지금은 오락실의 멤버가 어떻게 됬는지, 아니 그때 당시 내가 봤던 그들의 모습이 어땠는지조차 기억해낼 수 없지만 내 곰오디오 플레이 리스트에는 오락실의 후가 언제나 끼어있다. 난 그때 뒷이야기만을 기억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꾹 쥐고 있던 손에는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했던 추억'이라는 제목을 단 화사한 겉표지의 상자 하나가 쥐여있었던게 분명하다.

 

 시간이 흘러 난 그때보다 고통을 떠받드는 힘이 좀 더 쎄졌자만 짐도 힘만큼이나 늘었고, 비례식으로 볼 때 1:1과 5:5는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공식이 통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런 만큼 나는 하나도 자라지 않았고 나아질거라 생각했던 내 모습은 그대로였을 뿐 고작 숫자가 늘었을 뿐이지 답은 매 한가지. 어쩌면 난 똑같은 물건을 앞에 두고 포장을 달리해서 각각 다른 값을 매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뜯어낸 포장지 안의 내 추억의 빛은 나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렁이던 풍경의 실루엣까지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다가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거울속의 나조차 제대로 비춰보았더니 추한 괴물이더라. 거울 속 그 배경조차.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너무 선명하지 않은 은은한 기억의 등불 아래서 빛이 바래버린 추억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어때, 꽤나 괜찮은데? 이 각도, 그니까 이 대목에선 꽤 괜찮았지? 저 좀 괜찮죠? 괜찮게 살았죠?'하는 생각은  만족은 누구에게나 어느정도는 필요한 어리석음이 아닌가 싶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시맨트의 사각형에서 살기보다는 이쁜 벽지와 깔끔한 장판으로 꾸며놓은 곳에서 살고 싶은 건 누구나 다 같은 거 아닐까.

 

 오늘도 쓰디 쓴 현실 한 조각을 기억이라는 조그마한 유리병 안에 담아 망각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로 조심스럽게 감싸서 추억이라는 찬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아본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바라볼 때에 정말 달콤한 삶을 살았었구나, 오해할 수 있도록.

by 평범한아이 | 2009/11/07 19:52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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